그리고, 서재 — 현실 회귀물 소설
제6화: 다시, 집으로
2026.03.23 | 채택: 서재의문지기의 아이디어
📌 메인 채택: "부모님댁 방문 — 회귀 이후의 위화감이 본가에서도 느껴질까. 대전에서 KTX를 타고 서울로, 유명한 빵을 사서" — 서재의문지기 (대댓글 0개)
회귀 닷새째. 토요일 아침.
이번 주말은 집에 가기로 했다.
정확히는 '가야 한다'고 느꼈다. 회귀하고 나서 캠퍼스, 기준이, 김 교수, 지우 — 주변의 모든 것이 기억과 비슷하면서도 미세하게 달랐다. 그 위화감이 우리 집에서도 느껴질까.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 부모님이 내가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기숙사에서 나와 대전역까지 버스를 탔다. 역 근처 성심당에 들렀다. 토요일 오전이라 줄이 길었다. 튀김소보로 네 개, 판타롱부추빵 두 개. 엄마가 좋아하는 건 튀김소보로, 아빠는 판타롱. 전생에서 이걸 마지막으로 사 간 게 언제였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회사를 다니면서 서울에 살았으니 굳이 대전을 경유할 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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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창밖으로 3월의 논밭이 흘러갔다. 아직 파릇하지 않은 누런 들판. 핸드폰을 보다가 멈추었다. 2019년 3월 9일. 토요일. 전생에서 이 날 나는 뭘 하고 있었지? 졸업식 준비? 아니, 졸업식은 2월에 끝났다. 취업 준비? 맞다. 이 시기에 나는 자기소개서를 쓰고 있었다. 지금의 나는 대학원 진학을 결심했으니, 전생과 완전히 다른 길 위에 있다.
기준이에게 카톡이 왔다.
기준: 너 오늘 뭐함
시우: 서울 감. 부모님 댁
기준: 오 효자네 ㅋㅋ
기준: 빵 사감?
시우: 이미 삼
기준: …진짜 효자네
웃으면서 폰을 내렸다. 전생의 나라면 이 카톡에 답하지 않았을 것이다. '바쁘다'는 한 마디로 대화를 끊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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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에 내렸다. 사람이 많았다. 2019년의 서울역. 6년 뒤의 기억과 겹쳤다. 저 에스컬레이터, 저 개찰구, 저 편의점. 모든 게 똑같은데 공기가 달랐다. 2019년의 공기. 미세먼지 앱이 아직 국민 필수템이 되기 전의 공기.
지하철 4호선으로 갈아탔다. 노원 방면. 어릴 때부터 수백 번은 탄 노선이다.
현관문 비밀번호를 누르는 손이 떨렸다. 1-2-3-4. 아직 안 바꿨구나. 엄마한테 바꾸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문이 열리자 현관에 신발 냄새와 섞인 된장찌개 냄새가 났다. 이 냄새. 이 조합. 아빠 운동화와 엄마의 된장찌개. 눈물이 날 뻔했다.
"시우야?"
엄마가 부엌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앞치마를 두르고, 머리를 올리고, 국자를 든 모습. 기억 그대로였다.
"왜 갑자기 온다고도 안 하고."
"카톡 보냈잖아."
"카톡을 언제 봐. 전화를 해야지."
엄마가 투덜거리면서 웃었다. 그 웃음. 이 웃음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을까. 전생에서, 내가 죽기 전에, 이 집에 마지막으로 온 게 언제였지?
기억이 흐렸다. 회귀의 법칙이 또 작동하고 있었다. 중요한 기억일수록 선명하고, 무심했던 기억일수록 사라진다. 부모님 집 방문이 흐릿하다는 건 — 내가 자주 오지 않았다는 뜻이다.
"빵 사왔어. 성심당."
"어머, 이걸 또."
엄마가 봉투를 받아들고 눈이 커졌다. "튀김소보로! 이거 엄마가 좋아하는 거 기억하네."
기억하다니. 6년 뒤에서 돌아왔는데 이 정도는 기억한다.
"아빠는?"
"아빠 동네 마트 갔어. 금방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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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에 앉았다. TV 리모컨 위치, 쿠션 배치, 벽시계의 째깍거리는 소리. 전부 그대로였다. 위화감이 들 줄 알았는데 — 오히려 너무 같아서 무서웠다. 캠퍼스에서는 미세한 차이가 보였다. 잔디밭의 벤치 위치, 학생 식당의 메뉴판, 기준이의 말투. 전생의 기억과 0.5도쯤 어긋나 있었다.
그런데 이 집은 완벽하게 같았다.
아니 — 하나가 달랐다. 거실 한쪽 구석, 작은 수납장 위에 약봉투가 놓여 있었다. 하얀 종이 봉투에 '○○의원'이라고 적혀 있었다.
전생에서 저걸 본 적이 있었나? 기억이 안 난다. 아마 봤어도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예전의 나라면 부모님 집에 와도 내 방에 들어가서 자기소개서를 쓰거나 논문을 읽었다. 거실 구석의 약봉투 따위에 눈이 갈 리가 없었다.
엄마가 된장찌개를 담아 왔다. 밥상을 차리는 동안 나는 자연스럽게 물었다.
"엄마, 약봉투 저거 뭐야?"
엄마의 손이 잠깐 멈추었다.
"그거? 아, 아빠 약. 요즘 혈압이 좀 높아서."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손이 멈춘 건 봤다.
"많이 높아?"
"아니, 약간. 약 먹으면 괜찮아."
'괜찮아.' 기준이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괜찮다는 말이 제일 무서운 거야.'
"엄마는?"
"응?"
"엄마는 괜찮아?"
엄마가 멈춰 서서 나를 보았다. 이상하다는 듯이.
"갑자기 왜 그래?"
"그냥… 궁금해서."
"엄마는 괜찮지. 네가 밥 잘 먹고 건강하면 엄마는 괜찮아."
나는 된장찌개를 한 숟갈 떠 먹었다. 뜨겁고, 짜고, 익숙했다. 이 맛을 전생의 마지막 몇 년 동안 먹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아마 안 먹었다. 서울에 살면서도 집에 올 시간이 없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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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문이 열렸다. 아빠가 마트 비닐봉지를 들고 들어왔다.
"아이고, 이게 누구야."
아빠가 웃었다. 그 웃음도 기억 그대로였다. 다만 — 얼굴이 기억보다 조금 더 마른 것 같았다. 아니, 이건 2019년의 아빠니까 원래 이 정도였을 수도 있다. 6년 뒤의 아빠와 비교하려니 기준점이 없었다.
"성심당 빵 사왔다."
"오, 판타롱? 시우가 아직도 기억하네."
아빠가 빵 봉투를 열며 좋아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생각했다. 전생에서 아빠의 혈압이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 약을 계속 먹었는지, 악화되었는지, 괜찮아졌는지. 내가 관심을 두지 않았으니 기억에 남지 않은 것이다.
회귀의 법칙은 잔인하다. 미래를 알려주되, 내가 무심했던 것들은 지워버린다. 치트키는 없다. 비트코인 가격도, 로또 번호도, 취업 면접 질문도 떠오르지 않는다. 대신 — 이렇게 돌아와서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아빠의 약봉투. 엄마의 멈춘 손. 괜찮다는 말 뒤에 숨은 것들.
세 사람이 밥상에 둘러앉았다. 된장찌개와 김치와 계란말이. 작은 식탁.
전생에서 이 식탁에 마지막으로 앉은 게 언제였을까. 기억이 안 난다는 건, 아마 오래전이라는 뜻이다.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말했다.
"나, 대학원 가기로 했어."
아빠와 엄마가 동시에 나를 보았다.
"대학원? 취업은?"
"풀타임으로 갈 거야. 연구에 집중하고 싶어서."
침묵이 흘렀다. 전생에서 나는 이 말을 하지 않았다. 취업부터 했고, 야간 대학원은 나중에 슬쩍 알렸다. 부모님은 아들이 회사를 다니면서 대학원까지 다닌다는 걸 걱정했지만, 내가 '괜찮다'고 했으니 더 묻지 않았다.
이번에는 먼저 말한다. 숨기지 않는다.
"돈은 어떡하려고."
아빠가 물었다. 걱정이 아니라 확인하는 말투였다.
"조교 장학금이 있고, 부족하면 아르바이트 할게. 근데 회사는 안 다닐 거야."
엄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네가 하고 싶은 거면 해. 엄마는 네가 건강하면 돼."
또 '괜찮다'의 변형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게 들렸다. 엄마의 '괜찮다'는 진짜 괜찮다는 뜻이 아니라, '네가 괜찮으면 나도 괜찮다'는 뜻이었다.
밥을 다 먹고, 설거지를 했다. 전생에서는 한 번도 한 적 없는 일이었다.
싱크대 앞에 서서 그릇을 닦는데, 형광등이 깜빡였다. 한 번. 두 번.
숨이 멈추지는 않았다. 연구실의 형광등과는 달랐다. 여기는 — 집이니까.
하지만 하나 깨달은 게 있었다. 이 집의 형광등도 오래되었다. 아마 내가 고등학교 때부터 같은 형광등이다. 바꿔야 한다. 내가 바꿔야 한다.
"아빠, 거실 형광등 나 내일 바꿔놓을게."
"그거 괜찮은데?"
"아니, 깜빡여."
나는 형광등을 올려다보았다. 죽음의 기억은 떠오르지 않았다. 대신, 이 집이 아직 여기 있다는 감각만 남았다.
변하지 않는 것들. 된장찌개 냄새, 아빠의 운동화, 엄마의 투덜거림.
그리고 내가 6년 동안 보지 않았던, 약봉투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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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KTX 안에서 메모장을 열었다.
바꿀 수 있는 것 — 선택, 태도, 옆에 있는 시간.
바꿀 수 없는 것 — 지나간 시간, 흐려진 기억, 그리고 아직 모르는 것.
세 번째 칸에서 손이 멈추었다. 아직 모르는 것. 전생에서 내가 놓친 것이 얼마나 되는지, 이번 생에서도 다 볼 수 있을지.
하지만 하나는 확실했다. 오늘 처음으로, 엄마에게 '괜찮냐'고 물었다. 전생에서 한 번도 하지 못한 질문이었다.
폰이 울렸다.
엄마: 시우야 빵 맛있었어 고마워
엄마: 조심히 가
엄마: 밥은 먹었니
마지막 문장에서 웃음이 났다. 분명 배웅할 때 밥을 먹여 보내셨으면서.
시우: 먹었어
시우: 다음에 또 갈게
'다음에.' 전생에서 이 말을 몇 번이나 했고, 몇 번이나 지키지 않았을까.
이번에는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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