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서재 — 현실 회귀물 소설
제3화: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2026.03.20 | 채택: 서재의문지기님의 아이디어
📌 메인 채택: "시우의 회귀 이유에 대한 의문과 기준에게 던지는 질문 —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뭐부터 하고 싶어?'" — 서재의문지기님

학생 식당은 역시 시끄러웠다.
기준이가 내 옆에서 된장찌개 국물을 후후 불며 앉아 있다. 앞에 놓인 플라스틱 쟁반 위의 반찬들이, 이상하게도 선명했다. 노란 단무지, 짭조름한 멸치볶음, 살짝 질긴 돈까스. 6년 전에 먹었던 식단이 이렇게까지 기억에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이 모든 게 진짜라는 증거같이 느껴졌다.
"야, 너 밥 안 먹어?"
기준이가 젓가락으로 내 쟁반을 가리켰다. 나는 밥 한 술을 떠서 입에 넣었다. 따뜻했다. 죽기 전 마지막으로 먹은 건 편의점 삼각김밥이었다. 차가운 참치마요. 비닐을 뜯는 손이 떨리던 것까지 기억난다.
지금 이 밥은, 따뜻하다.
"기준아."
"응."
"갑자기 이상한 질문 하나 해도 돼?"
기준이가 된장찌개에서 두부를 건지다 말고 나를 봤다. 뭐 또 무슨 소리를 하려고, 하는 표정이었다. 어제 잔디밭에서 내가 울먹거린 게 아직 신경 쓰이는 모양이다.
"너, 만약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뭐부터 하고 싶어?"
순간 기준이의 젓가락이 멈추었다.
나는 가벼운 질문인 척 웃으며 물었지만, 기준이는 그걸 가볍게 받아주지 않았다. 두부를 천천히 입에 넣고, 씹고, 삼킨 뒤에야 입을 열었다.
"과거? 얼마나 전?"
"글쎄, 마음대로."
"…어제."
"어제?"
기준이가 국물 그릇을 양손으로 감싸 쥐었다. 식당의 소음 사이로 그 목소리만 유난히 또렷했다.
"어제 지우한테 한 말 취소하고 싶다."
지우. 박지우. 기준이의 고등학교 동창이자, 같은 과 3학년. 기준이가 가끔 이름을 꺼내는 사람이었는데, 나는 전생에서 그 이름을 별로 기억하지 못한다. 아니, 기준이의 대학 시절 자체를 별로 기억하지 못하는 게 맞다. 졸업하고 취직하면 대학 동기 대부분은 이름만 남는다.
"무슨 말을 했는데?"
"…그냥, 필요없는 말."
기준이는 더 말하지 않았다. 나도 더 묻지 않았다.
그냥, 이 녀석도 후회가 있구나. 하루짜리 후회가. 나처럼 12년이 아니라 하루. 하지만 기준이의 표정을 보면, 하루짜리 후회도 꽤 무거운 모양이었다.
• • •
문득 생각했다.
나는 왜 돌아온 걸까.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천재도 아니고, 영웅도 아니고, 세상을 바꿀 비전을 가진 사람도 아니다. 그냥 시키는 일을 하고, 마감을 지키고, 체력이 바닥나면 에너지 드링크를 마시며 버텼을 뿐이다. 성실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솔직히 그건 다른 선택지가 없어서였다.
모범생이라고? 웃기지 마라.
고등학교 때 나는 겉도는 아이였다. 싹싹하지도 않았고, 특별히 반항적이지도 않았다. 그냥 존재감이 없었다. 수업이 끝나면 조용히 가방을 싸고, 혼자 버스를 타고, 혼자 밥을 먹었다. 대학에 와서도 크게 달라진 건 없었다. 기준이 같은 애가 옆에 있어 줘서 간신히 '사회적 인간'의 형태를 유지했을 뿐이다.
그런 내가 왜?
회귀라는 건 소설에서나 나오는 거다. 그리고 소설에서 회귀하는 주인공은 대개 특별한 이유가 있다. 복수, 사랑, 세계를 구하는 사명. 나한테는 그 어떤 것도 없다. 논문 마감에 치여 죽었을 뿐이다.
마감에 치여 죽은 대학원생이 다시 태어나봤자 뭘 어쩌겠다는 건가.
…하지만 밥이 따뜻하다.
그 사실 하나가, 이상하게도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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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에 도서관에 갔다.
논문이 문제였다. 아니, 문제라기보다는 미래에서 가져온 유일한 실질적 자산이었다. 나는 이 논문이 어떤 과정을 거쳐 완성되었는지 안다. 3장의 논리가 약한 것도, 5장의 실험 설계에 빈틈이 있었던 것도, 심사위원 두 번째 분이 마지막에 '재미있지만 근거가 부족하다'고 했던 것도 기억난다.
다만, 디테일이 문제다.
도서관 3층, 늘 앉던 창가 자리. 노트북을 펼치고 논문 파일을 열었다. 3장, 선행 연구 분석. 화면에 뜬 내 글을 읽었다.
'…기존 연구들은 주로 단일 변수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나, 본 연구는 다변량 접근을 통해…'
나는 미래의 기억으로 이 부분을 고치려 했다. 심사위원이 지적한 논리적 허점을 미리 메우면 된다. 간단한 일이어야 했다.
그런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심사위원이 뭐라고 했는지는 안다. '근거가 부족하다.' 하지만 정확히 어떤 근거를? 어떤 선행 연구를 추가하면 됐던 건지? 레퍼런스 번호는? 저자 이름은?
안개 속에 손을 넣는 것 같았다. 윤곽은 보이는데 잡히지 않는다.
나는 한숨을 쉬고, 결국 논문을 처음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미래의 기억으로 바로잡는 게 아니라, 지금 내 눈으로 다시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3장 중반, 내가 인용한 2017년 논문. 그때는 별 생각 없이 넣었던 레퍼런스였다. 하지만 6년의 세월을 살고 돌아온 지금, 그 논문의 의미가 다르게 읽혔다. 저자가 조심스럽게 언급한 '부수적 변수의 상호작용 가능성'이라는 한 문장이 눈에 꽂혔다.
그때는 몰랐다.
그 '부수적 변수'가 내 논문의 핵심이 될 수 있다는 걸.
미래의 기억이 답을 준 게 아니었다. 살아온 시간이, 같은 글을 다른 눈으로 읽게 해준 것이었다.
손가락이 저절로 키보드 위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래간만에, 정말 오래간만에 글이 써졌다.
• • •
얼마나 지났을까.
눈을 들었을 때, 도서관은 어두워져 있었다. 저녁 7시. 창밖은 보라색이었다. 캠퍼스 가로등이 하나둘 켜지고, 도서관 열람실에는 나를 포함해 대여섯 명만 남아 있었다.
일어서서 기지개를 켰다. 허리가 아팠다. 이 몸은 스물다섯이라 31살 때보다는 낫지만, 자세가 나쁜 건 나이와 상관없는 모양이다.
복도로 나가 자판기에서 캔커피를 뽑았다. 거스름돈이 100원 부족해서 아메리카노 대신 밀크커피를 눌렀다. 달달한 맛이 혀끝에 퍼졌다.
그때였다.
복도의 형광등이 깜빡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에 불이 꺼지고, 다시 켜졌다.
그 짧은 어둠 속에서 나는 연구실 천장을 보았다. 쓰러지면서 올려다본, 노란 불빛. 깜빡이던 형광등. 시야가 좁아지고, 소리가 멀어지고, 마지막으로 생각한 건——
캔커피가 바닥에 떨어졌다.
밀크커피가 복도 타일 위로 퍼져나갔다.
괜찮아. 괜찮아. 숨을 쉬었다. 한 번, 두 번.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었지만, 뛰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안도가 되었다.
여기는 도서관이다. 2019년이다. 나는 살아 있다.
• • •
주머니에서 폰을 꺼냈다. 화면을 켰다. 2019년 3월 4일, 오후 7시 12분. 안읽은 카카오톡 3개.
기준: 야 저녁 먹었냐
기준: 학식 닫혔는데 치킨 시킬까
기준: 아 그리고 김 교수님이 내일 랩미팅 한다고 공지 올렸어
김 교수님.
나는 그 이름을 보며 멈췄다. 김혁준 교수. 내 지도교수가 될 사람. 내가 석사 마지막 학기에 쓰러진 그 연구실의 주인. 전생에서 나는 이 사람 밑에서 거의 3년을 보냈다.
그런데 지금은 학부 4학년이다. 아직 대학원에 지원하기 전이다.
선택할 수 있다.
다른 교수를 고를 수도 있고, 대학원 자체를 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 논문 — 오늘 다시 읽고, 다시 쓰기 시작한 그 논문은, 김혁준 교수의 연구실에서만 완성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었다.
폰 화면이 꺼졌다. 복도의 형광등이 다시 안정적으로 빛나고 있었다.
나는 바닥에 쏟아진 밀크커피를 바라보았다. 하얀 액체가 타일 틈새를 따라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선택해야 한다.
죽음을 향해 걸어간 그 길을 다시 걸을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문을 열 것인지.
내일 아침, 랩미팅이다.
,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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