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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논문] 제8화: 같은 방향으로 찍는 마침표

서재의문지기 2026. 4. 14. 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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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서재 — 현실 회귀물 소설

제8화: 같은 방향으로 찍는 마침표

2026.04.14 | 🌙 문지기의 간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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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댓글이 없어, 문지기가 직접 다음 장을 펼쳤습니다

독자의 아이디어가 닿지 않은 날에도, 이야기는 멈추지 않습니다. 문지기가 조용히 책장 한 장을 넘겨,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 본 하루를 적어 두었습니다.

📎 본 화는 독자 참여 크레딧·랭킹 포인트 미반영. 다음 화에서 다시 여러분의 ", 그리고…"를 기다립니다.

꿈을 꾸었다.

내용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어두운 방 한가운데에서 숫자가 떠 있었다. 7F인지 FF인지, 그 사이에 알파벳과 숫자가 뒤섞여 있었고 — 깨어난 순간 그 한 줄이 아침 햇살에 흩어졌다. 손에 잡히지 않는 수증기처럼.

핸드폰을 켜니 2019년 3월 11일 월요일, 새벽 여섯 시 십이 분이었다. 논문 제출일.

전생에서 이 아침이 어땠는지를 떠올려 본다. 회사 야근을 마치고 새벽 두 시에 들어와, 샤워도 못 하고 논문 파일을 열었다가, 다섯 시쯤 소파에서 깜박 잠들었다. 일어났을 때는 출근 시간이 지나 있었고, 반차를 써서 학교로 달려가며 택시 안에서 3장 마지막 문장을 고쳤었다. 끝까지 부끄러운 제출이었다.

이번에는 다르다. 어제 저녁에 3장을 세 번 더 읽었고, 참고문헌을 한 번 더 정리했고, 제출용 PDF는 이미 바탕화면에 있다. 파일 이름도 "학부졸업논문_한시우_최종제출.pdf"로 단정하게 바꿔 두었다. 전생의 나는 이 파일 이름을 마지막 순간까지 "최종_찐최종_진짜최종_v3"로 남겨두었을 것이다.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시리얼을 부었다. 아침밥을 챙긴 건 회귀 후 처음이다. 한 숟갈 입에 넣고 창밖을 보니, 어제까지 안 보이던 무언가가 보이는 기분이 든다.

새로운 월요일이 생겼다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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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사 앞 복도에는 학생 대여섯 명이 줄을 서 있었다. 손에 든 봉투의 두께가 제각각이다. 논문을 바인딩한 두툼한 것부터, PDF 출력본 한 권짜리까지. 나는 출력본을 가져왔다.

앞에 선 학생이 과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조교가 "서명은 한 주 뒤에 와서 받아 가세요"라고 말한다. 뒤에서 기다리며 — 한 번, 두 번, 숫자를 세듯 — 그 말을 세 번쯤 듣다가 내 차례가 되었다.

"안녕하세요. 졸업논문 제출하러 왔습니다."

조교가 목록에서 내 이름을 찾아 체크 표시를 한다. 볼펜이 종이를 긁는 소리가 이상하게 또렷하다. "수고하셨어요." 그 말 한 마디에 이상하게 숨이 차올랐다.

복도로 나오자 바로 뒤에서 누가 따라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박지우였다. 어제까진 그림자처럼 흐릿했던 사람이 오늘은 선명하다. 크림색 니트 대신 회색 후드 집업을 걸치고, 어깨에는 어제와 같은 에코백을 메고 있었다.

"시우 선배."

"어. 너도 제출하러 왔구나."

"네. 방금 냈어요." 지우는 웃으며 자기 손에 든 봉투를 들어 보였다. 꽤 두툼했다. "선배는 출력본만 내셨네요."

"응. 바인딩할 시간이 없었어."

거짓말이었다. 시간은 있었다. 다만 전생의 내가 바인딩 따위에 돈을 쓰지 않았던 기억이 몸에 배어 있어서, 이번에도 그냥 안 한 것이다. 바꿀 수 있었는데 바꾸지 않은 것. 이런 작은 것들도 세어보면 제법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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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같이 드실래요?" 지우가 묻는다.

전생의 나라면 "미안, 선약 있어"라고 말했을 것이다. 있는 선약보다 없는 선약이 많았는데도 꼭 그렇게 말했다. 관계에 드는 시간만큼 논문에 쓸 시간이 줄어든다고 믿었으니까.

"그래. 어디로 갈까?"

지우가 살짝 놀란 얼굴로 — 아주 순간적으로 — 나를 쳐다본다. 그리고는 금방 평정을 되찾고 말한다.

"학관 2층 국수집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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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집은 월요일 점심이라 붐볐다. 우리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김이 올라오는 잔치국수 위로 봄볕이 길게 내려앉았다. 지우는 젓가락을 들기 전에 말했다.

"선배, 저 작년부터 김 교수님 랩에서 연구참여 하고 있었거든요."

"그랬어?"

"한 번, 랩 복도에서 인사한 적 있어요. 선배가 문서 뽑으러 오셨을 때."

기억이 없다. 전생에서도 없던 기억이다. 이런 순간이 가장 조심스럽다. 상대는 분명 있었던 사건을 말하는데, 나에게는 그 자리가 흰색 벽처럼 비어 있을 때. 기억이 없는 곳에 거짓말을 채우지 않는 게 회귀 이후 나의 작은 규칙 중 하나다.

"미안,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때 정신이 없었어."

"괜찮아요." 지우는 면을 한 젓가락 집어 올리며 짧게 웃는다. "선배, 그때 진짜 유령 같았어요."

유령.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는다. 나는 천천히 국수를 입에 넣고 씹는다. 전생의 내 몸에는 실제로 내가 덜 들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지우야, 너 논문 주제가 뭐였어?"

"부수적 변수의 상호작용이요. 머튼 1973 재해석."

숟가락이 멈췄다. 내가 어제 도서관 옆자리에서 본 노트 — 그 주인이 지금 내 앞에 앉아 있었던 것이다. 전생에서는 같은 주제를 연구하는 사람이 가까이 있었다는 걸 끝내 몰랐다. 몰랐다기보다, 보려고 하지 않았다.

"나랑 거의 비슷한 주제네."

"알아요. 어제 도서관에서 선배 노트 봤어요." 지우가 장난스럽게 웃는다. "일부러 같은 자리에 앉았어요."

 

• • •

 

학관을 나오며 지우에게 물었다.

"왜 이 주제로 했어?"

"머튼의 논문이 이상할 정도로 친절해서요. 본론을 읽는데 각주가 저한테 말을 거는 것 같았어요. '이걸 놓치지 마세요' 하고."

"그런 논문이 있지."

"선배는요?"

나는 잠시 대답을 고른다. 전생에서 이 주제를 끝까지 끌고 가지 못한 건 단순히 바빴기 때문이 아니었다. 부수적 변수를 제대로 읽으려면 옆에 있는 사람도 부수적 변수로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는, 아주 당연한 사실을 그 시절의 나는 몰랐다.

"…비슷한 이유야."

 

• • •

 

오후에는 도서관 3층으로 올라갔다. 어제 앉았던 자리는 비어 있었고, 옆자리 — 지우의 자리 — 도 비어 있었다. 둘 다 비어 있는 두 개의 의자가, 마치 오늘 하루를 같이 걸어간 두 사람의 발자국처럼 보였다.

자리에 앉아 논문 PDF를 닫고, 빈 워드 파일을 하나 새로 열었다. 파일 이름은 일단 "대학원_노트_001"이라고 붙였다. 전생의 내가 석사 과정 내내 파일 하나에 "석사_메모장.docx" 하고 뭉뚱그려 놓았던 걸 떠올리며, 이번에는 번호부터 달아 두기로 한다.

잠깐 커서가 깜빡이는 걸 바라보다가, 한 줄만 적었다.

"부수적 변수를 다시 읽자. 옆에 있는 사람부터."

쓰고 나니, 이게 논문 메모인지 일기인지 모호해진다. 어쩌면 당분간은 그 둘을 분리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책상 위 형광등이 한 번 깜빡였다. 아주 잠깐. 가슴이 먼저 반응하지만, 어제와 달리 숨이 막히지는 않는다. 형광등은 형광등이다. 나도 이제 그 말을 스스로에게 해 줄 수 있게 되었다.

 

• • •

 

저녁에 기준이 기숙사 방으로 왔다. 노크도 없이, 손에는 편의점 비닐봉지를 들고.

"제출 기념."

꺼낸 건 캔맥주 두 개와 소시지 하나였다. 책상 위에 늘어놓고 맥주 캔을 따주며 기준이 말했다.

"네가 진짜 월요일에 제출할 줄 몰랐어."

"왜?"

"전에 네 입에서 '다음 주'라는 말이 몇 번 나왔는지 세어봤거든. 세다가 지쳤어."

그 말에 웃음이 샜다. 전생의 나는 분명 "다음 주"에 제출할 생각이었다. 반차를 쓰고, 택시를 잡고, 3장 마지막 줄을 고치면서.

"기준아."

"응."

"지난주에, 너 나한테 그랬잖아. 나는 자꾸 어딘가 가버릴 것 같다고."

"어."

"오늘은 어땠어?"

기준이 맥주 캔을 한 번 만지작거리다,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오늘은…… 어디 안 가던데."

 

• • •

 

기준이 돌아간 뒤, 책상 위 메모장을 꺼냈다. KTX에서 쓴 두 장짜리 종이. 한 면에는 "바꿀 수 없는 것 / 바꿀 수 있는 것", 뒷면에는 "해볼 수 있는 것".

해볼 수 있는 것 칸 밑에 한 줄을 덧붙였다.

"오늘 같이 마침표를 찍은 사람의 수를 세어 두기."

그리고는 한참을 그 줄을 바라보다, 작게 웃었다. 카프카의 그 문장을 — 삶의 의미는 그것이 끝난다는 데 있다는, 그 오래된 문장을 — 지금은 이렇게 바꾸어 써도 될 것 같았다. 끝이 있다는 걸 알기 때문에, 오늘의 마침표를 누구와 찍었는지가 더 선명해진다고.

끝을 아는 문장은, 오늘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불을 끄고 누웠다. 새벽의 숫자열 꿈이 어렴풋이 떠올랐다가 다시 사라졌다. 뭔가 의미가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아무것도 아닐 것 같기도 한. 잊어버려도 괜찮은 꿈.

내일부터는 대학원생이다. 전생에서도 대학원생이었다. 같은 단어지만 다른 월요일. 다른 동료. 다른 파일 이름.

이번에는 옆자리에 누가 있는지 알고 가는 월요일.

,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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