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써내려가는 이야기

그리고,

🔮 판타지/📖 회귀논문

[회귀논문] 제9화: 이름이 붙는 자리

서재의문지기 2026. 5. 9. 11:36
반응형

그리고, 서재 — 현실 회귀물 소설

제9화: 이름이 붙는 자리

2026.04.23 | 🌙 문지기의 간택

▶ 이전 화 보기: 제8화 — 같은 방향으로 찍는 마침표

🌙 오늘은 댓글이 없어, 문지기가 직접 다음 장을 펼쳤습니다

서재의문지기가 마스터 플롯의 흐름을 따라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다음 화에는 여러분의 아이디어가 다시 함께하기를.

📎 본 화는 독자 참여 크레딧·랭킹 포인트 미반영. 다음 화에서 다시 여러분의 ", 그리고…"를 기다립니다.

2019년 3월 12일 화요일, 새벽 여섯 시 반. 알람을 끄기 전에 이미 깨어 있었다. 이불 안이 이상하게 미지근하다. 전생에서는 늘 발목이 차가웠던 기억이 있는데, 오늘 아침엔 이불과 내 체온이 경계 없이 섞여 있다. 어제 논문을 제출하고 집에 와 샤워를 했고, 오래 누워 있었다. 그래서 그런가.

핸드폰을 켜니 엄마에게서 카톡이 와 있다.

엄마: 시우야 오늘 오티라고 했지. 밥 챙겨 먹어라.

엄마: 비 온댔다. 우산 가져가.

확인만 하고 답을 미뤘다. 아침에 할 말을 준비해 둘 것이 있다.

창밖을 본다. 아직 비는 안 오고, 구름이 천천히 움직인다. 일기예보는 오후 세 시쯤 비라고 했고, 내 기억 어딘가에도 그런 기록이 있다. 전생의 이 날, 나는 오후에 비를 맞으며 과사를 지나갔다. 그때는 그냥 '비 오네'였다. 오늘은 그 비가 언제 올지 미리 아는 기분이 조금 다르다.


• • •


대학원 오리엔테이션은 사회과학관 301호에서 아홉 시 반이었다. 학생증을 반납하고 받은 임시 출입카드를 목에 걸었다. 이름 아래 작은 글씨로 '대학원 신입생'이라고 인쇄되어 있다. 학부 때 4년 동안 들고 다니던 학생증의 사진은 잔뜩 긴장한 스무 살이었다. 오늘 받은 카드의 사진은 어제 저녁 기숙사에서 급하게 찍은 것이다. 같은 얼굴인데 다른 눈빛이다.

301호 문 앞 게시판에 신입생 명단이 붙어 있었다. 손가락을 따라 내려가다 내 이름에서 멈췄다.

박지우 / 정책학 / 지도교수 김혁준
한시우 / 정책학 / 지도교수 김혁준

두 줄이 나란히 붙어 있었다. '박지우'가 먼저다. 알파벳도 아니고 학번도 아닌 순서다. 서류를 내는 순서였을까, 아니면 누군가가 그렇게 적었을까. 상관없는 것일 텐데, 이상하게 오래 봤다.

강의실 안으로 들어가니 지우가 먼저 와서 앞에서 두 번째 줄에 앉아 있었다. 어깨너머로 보이는 노트북 배경화면이 연구실 풍경 같았다. 내가 옆자리에 앉자 지우가 고개를 돌렸다.

지우: 선배도 김 교수님 랩이에요?

시우: 응. 너는 처음부터 김 교수 랩이었다고 했지.

지우: 네. 작년 여름부터요. 선배 논문 3장 봤어요. 부수적 변수 얘기.

시우: 언제.

지우: 어제 선배가 자리에 두고 간 출력본. 제출하고 나오실 때 복도 벤치에 놓여 있었어요. 챙겨 두려다가 두 장만 읽었어요.

나는 그걸 거기 두고 나온 줄도 몰랐다.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전생의 나라면 그 출력본을 잃어버린 줄도 모르고 반년 뒤에 책상 서랍에서 발견했을 것이다. 오늘은 그 출력본이 옆자리에 먼저 와 있다.

원장님이 들어와 2019학년도 대학원 입학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연구 윤리, 장학금 규정, 도서관 이용법. 전생에서 이미 들었던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같은 말이 다르게 들렸다. '도덕적 상상력'이라는 단어가 슬라이드 한 장에 지나갔고, 나는 받아 적지 않았는데도 그 네 글자가 머릿속에 오래 머물렀다. 전생에 나는 이 강의를 한 쪽 귀로 듣고 한 쪽 귀로 흘렸을 것이다.


• • •


점심은 학관 라면집에서 지우와 먹었다. 어제의 국수집과는 다른 가게, 계단을 두 층 더 내려가야 있는 곳. 사람이 많았고 김이 자욱했다. 지우가 계란을 하나 더 풀어 달라고 주인에게 말했다.

지우: 선배, 어제 선배 메모장에 '바꿀 수 없는 것' 적은 거 있었잖아요.

시우: …어떻게 봤어.

지우: 어제 복도 벤치에 놓여 있던 출력본에 포스트잇으로 붙어 있었어요. '지나간 시간, 흐려진 기억, 그리고 아직 모르는 것.' 세 번째 칸이 왜 물음표였어요?

나는 젓가락을 멈췄다. 그 포스트잇은 내가 토요일에 KTX에서 적었던 것이다. 제출 직전에 옮겨 붙여 놓았다가 깜박 잊고 놓고 나온 것이다. 뒤에서 누군가가 이어서 읽고 있었다는 건 몰랐다.

시우: 채울 말을 아직 못 찾아서.

지우: 저는 첫 번째 칸이 제일 부럽던데요. '지나간 시간.' 그건 애쓰지 않아도 바꿀 수 없잖아요.

시우: 그렇지.

지우: 근데 선배. 세 번째는 '아직' 모르는 거니까, 시간 지나면 알게 될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그럼 결국 바꿀 수 있는 거 아니에요?

나는 그 말에 답하지 못했다. 라면을 한 젓가락 떠서 입에 넣고, 뜨거워서 후, 하고 바람을 불었다. 지우도 더는 묻지 않았다.

아직 모르는 것은, 아직 바꿀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식후에 나는 자리에 앉은 채로 엄마에게 카톡을 보냈다.

시우: 엄마

시우: 아빠 혈압약 언제부터 드신 거예요

엄마: 왜 갑자기

시우: 그냥 궁금해서

엄마: 너 대학원 합격 발표하고 나서부터. 너 걱정해서 그러는 거 아니야. 아빠는 원래 좀 그랬어. 네가 몰랐을 뿐이지.

엄마: 걱정하지 말라니까. 밥이나 먹어.

엄마의 답을 세 번쯤 다시 읽었다. '너 대학원 합격하고 나서부터'. 아빠의 몸이 약을 먹기 시작한 시점이 내가 꿈을 이룬 시점이라는 건, 나에게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전생에서 아빠의 혈압을 알게 된 건 훨씬 나중이었고, 그때 나는 이미 이 도시에 없었다.

핸드폰을 한참 들고 있다가 지우가 "선배, 이따 랩 가요?" 하고 물었다. "응. 바로 갈게."


• • •


연구실 417호. 문을 열고 들어가니 김혁준 교수가 마침 복도 쪽을 보고 있었다. 반가운 얼굴이었다 — 적어도 이번에는 그랬다.

김 교수: 어, 한시우 학생. 지우한테 얘기 들었어요. 같은 걸 파고 있다고.

시우: 안녕하세요 교수님.

김 교수: 책상은 지우 옆이에요. 두 사람이 바로 얘기할 수 있게. 부수적 변수 얘기는 내가 오래 관심 있는 주제라 반가워요.

김 교수가 내 책상을 가리켰다. 창가에서 두 번째, 지우 옆자리. 책상 위에는 이미 A4 한 장이 놓여 있었다. 『An Intertemporal Capital Asset Pricing Model』 — Merton, 1973. 지우가 아침에 출력해 둔 것이었다. 제목 옆 여백에 파란 볼펜으로 작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선배 반갑습니다. — 지우

나는 그 메모를 오래 봤다. 전생에서 이 자리에 앉은 적이 없지는 않았다. 정확히는, 앉기는 앉았지만 아무도 나에게 이런 메모를 남긴 적이 없었다. 내가 먼저 남기지도 않았으니까.

포스트잇 한 장을 꺼내 한 줄을 적어 책상 구석에 붙였다. '옆자리가 있다는 것이 이렇게 조용할 수 있구나.'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지우가 그 아래에 답을 붙여 두었다. '안녕하세요. 박지우입니다.' 이름 하나로 끝나는 인사.


• • •


랩에서 나와 복도 끝 창가에 섰다. 핸드폰을 들고 있다가, 한참 망설이다가, 엄마가 아니라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 버튼을 누른 건 처음이었다. 발신 기록에서 아빠 번호를 찾아 누른 것도 처음이었다.

세 번째 벨에서 아빠가 받았다.

아빠: 어. 시우야. 웬일이야.

시우: 아니, 그냥요. 식사하셨어요?

아빠: 했지. 너는?

시우: 라면이요.

아빠: 그럼 저녁은 밥 먹어라.

시우: …네.

아빠: 끊는다.

시우: 네.

통화는 삼십 초도 안 됐다. 끊고 나서 한참 동안 복도에 서 있었다. 아빠의 목소리는 전생의 기억보다 조금 낮고, 조금 짧게 웃었다. 나는 창문에 기대어 창밖을 보았다. 손목시계를 슬쩍 확인한다. 오후 세 시 십칠 분. 그 순간 창 바깥에서 첫 빗방울이 유리에 닿았다.

분명 일기예보는 '오후 3시쯤'이라고만 했는데, 내 기억 어딘가에는 '3시 17분'이라는 정확한 숫자가 있었다. 지금 눈앞에서 비가 그 숫자에 맞춰 시작된다. 이상한 일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낯설지 않았다. 몇 초쯤 지나자 그 숫자가 원래부터 정확했던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누군가가 방금 기억을 수정해 준 것처럼.

작은 위화감이 스쳐 갔지만, 금세 빗소리가 그 위를 덮었다.


• • •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 기준에게서 카톡이 왔다.

기준: 야 내일 점심 같이 먹자

시우: 좋아

기준: 너 요즘 진짜 변했다

시우: 응

기준: 안 무섭게 변해서 다행임

시우: 뭐야 ㅋㅋ

기준: ㅋㅋㅋ 내일 봐

방에 들어와 불을 켰다. 오늘 받은 임시 출입카드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한참 봤다. '대학원 신입생 한시우'. 이름이 붙는 자리. 어제까지는 이름이 없는 자리에 있었고, 오늘은 이름이 붙은 자리에 앉았다. 그 차이가 이렇게 조용한 것일 줄 몰랐다.

자기 전에 메모장을 열었다. 토요일에 적어 둔 세 칸 목록을 꺼냈다. '바꿀 수 있는 것 / 바꿀 수 없는 것 / 해 볼 수 있는 것.' 그 옆에 새 칸을 하나 더 그었다.

아직 모르는 것
— 아빠의 약이 언제부터인지, 정말로 나 때문인지
— 박지우라는 이름이 전생의 어느 복도에 있었는지
— 옆자리에 먼저 앉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내가 왜 몰랐는지

세 칸째의 물음표를 지웠다. 대신 그 자리에 한 줄을 적었다.

아직 모르는 것은, 아직 바꿀 수 있는 것이다.

불을 끄기 전 창밖을 한 번 더 본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고, 그 소리가 오늘은 유난히 고르다. 너무 고르다.

📭 문지기가 열어둔 문

오늘 문지기가 혼자 펼친 페이지에, 여러분의 손글씨 한 줄을 기다립니다. 댓글로 세 문 중 하나만 열어 주세요.

  1. 시우가 내일 기준과 점심에서 꺼낼 첫 마디는 무엇일까요? (논문 얘기 / 아빠 얘기 / 전혀 다른 것)
  2. 게시판에 '박지우'가 먼저, '한시우'가 다음에 적혀 있었던 그 순서 — 시우는 그 의미를 언제, 어떻게 다시 만나게 될까요?
  3. "너무 고른 빗소리" — 그 위화감을 시우가 처음으로 입 밖에 꺼내는 순간은, 누구 앞에서일까요?

, 그리고…

📖 다음 이야기는 여러분이 만듭니다

댓글로 ", 그리고…" 뒤의 이야기를 알려주세요!

작성 방법은 참여 가이드를 확인해주세요.

🏆 채택된 댓글은 다음 화에 크레딧과 함께 반영됩니다!

본 소설은 AI가 독자 댓글을 기반으로 생성한 창작물입니다. 매일 새로운 이야기가 업데이트됩니다. 그리고, 서재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