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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논문] 제1화: 삶의 의미는 그것이 끝난다는 데 있다

서재의문지기 2026. 3. 20.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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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서재 — 판타지/회귀물

제1화: 삶의 의미는 그것이 끝난다는 데 있다

2026.03.20 | 시리즈: 회귀논문

카프카가 말했다. 삶의 의미는 그것이 끝난다는 데 있다고.

한시우는 그 문장을 처음 읽었을 때 고개를 끄덕였다. 대학교 2학년, 독문학 교양 수업 시간이었다. 교수가 칠판에 적은 그 한 줄이 묘하게 가슴에 남았다.

끝이 있으니까 의미가 있다. 그럴듯한 말이었다.

문제는, 논문은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오후 11시 47분. 회사 퇴근 후 곧장 달려온 대학원 연구실. 한시우는 노트북 화면에 얼굴을 묻을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석사 3학기. 논문 중간 발표가 이번 주였다.

낮에는 IT기업 개발팀에서 일하고, 저녁이면 학교로 달려와 논문을 썼다. 주말도 없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모를 때가 많았다. 월요일이든 토요일이든 그에게는 '출근하는 날'과 '논문 쓰는 날'의 구분만 있었고, 대부분의 날이 둘 다였다.

"시우야, 아직도 있어?"

같은 연구실의 후배 정민이가 가방을 메며 물었다.

"응. 3장 마무리만."

"형, 그 '3장 마무리만'이 지난주에도 같은 말이었는데."

"...이번엔 진짜야."

정민이가 피식 웃으며 나갔다. 연구실에 혼자 남았다. 형광등이 지직거리며 깜빡였다.

한시우는 에너지 드링크 캔을 들었다. 비어 있었다. 책상 위에는 빈 캔이 네 개 놓여 있었고, 그 옆에 편의점 삼각김밥 포장지 두 개. 그게 오늘의 전부였다.

모니터에는 논문 파일이 떠 있었다.

제3장 선행연구 분석

커서가 깜빡이고 있었다. 세 시간째 같은 자리에서.


한시우는 천재가 아니었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때 성적은 중상위권. 대학도 서울 소재지만 이름을 대면 "아, 거기요?" 하는 정도의 학교. 입사한 회사도 대기업은 아니었다. 중견 IT기업. 나쁘지 않지만 특별하지도 않은.

석사를 시작한 건 순전히 성실함 때문이었다. 회사에서 3년 일하다 보니 학위가 있으면 더 나은 기회가 올 것 같았다. 야간 대학원을 알아봤고, 합격했고, 다니기 시작했다. 거기까지는 좋았다.

문제는 논문이었다.

지도교수는 "한시우 씨는 성실하니까 잘할 거야"라고 했다. 그 말이 저주가 될 줄은 몰랐다. 성실한 사람에게 논문은 끝없는 터널이었다. 대충 쓸 줄을 몰랐으니까. 한 줄을 쓰면 열 개의 참고문헌이 보였고, 한 문단을 완성하면 세 가지 반론이 떠올랐다.

이 논문은 끝나지 않는다.

카프카가 논문을 썼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논문의 의미는 그것이 끝난다는 데 있다고. 끝나야 의미가 있는데, 끝나질 않으니 의미도 없다.


자정을 넘겼다.

한시우는 왼쪽 관자놀이를 눌렀다. 두통이 심해지고 있었다. 요즘 들어 유독. 수면 부족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어제 세 시간, 그저께 두 시간. 그 전날은 아예 못 잤다.

핸드폰을 봤다. 카카오톡 알림 하나.

엄마: 시우야 밥은 먹었니

읽고 답장을 하지 않았다. 엄마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지만, "먹었어"라고 거짓말하기도 싫었다. 삼각김밥 두 개를 '밥'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다시 모니터를 봤다. 커서가 깜빡이고 있었다.

3장. 선행연구 분석. 커서.

한시우는 키보드 위에 손을 올렸다. 뭔가를 쓰려고 했다. 머릿속에 문장이 떠올랐다가 흩어졌다. 떠올랐다가 흩어졌다.

그때 왼쪽 가슴이 찌릿했다.

처음에는 그냥 결림인 줄 알았다. 자세가 안 좋으니까. 목이랑 어깨가 굳어 있으니까. 그런 거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통증이 왔을 때는 숨이 막혔다.

세 번째는 없었다.

한시우는 키보드 위에 고개를 떨궜다. 모니터에는 여전히 커서가 깜빡이고 있었다. 3장 선행연구 분석. 마지막으로 입력된 글자는 없었다. 커서만 깜빡.

깜빡.

깜빡.


어둠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어둠. 소리도, 냄새도, 감각도 없었다. 한시우는 자신이 죽었다는 것을 알았다. 알았다기보다 느꼈다. 이상하게도 공포는 없었다. 그냥 끝났구나, 하는 감각.

삶의 의미는 그것이 끝난다는 데 있다.

카프카의 문장이 어둠 속에서 떠올랐다.

그러면 이제 의미가 완성된 걸까. 끝났으니까. 31년. 회사 3년, 대학원 1년 반, 에너지 드링크 몇천 캔, 삼각김밥 몇백 개. 그리고 끝내 완성하지 못한 논문 하나.

이게 내 삶의 의미?

웃기지도 않았다.

어둠 속에서 뭔가가 반짝였다. 빛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았다. 커서 같았다. 모니터 위에서 깜빡이던 그 커서.

깜빡.

깜빡.

깜빡—


알람 소리가 울렸다.

한시우는 눈을 떴다.

낯선 천장이었다. 아니, 낯선 게 아니었다. 이 천장을 알고 있었다. 오래전에.

몸을 일으켰다. 좁은 방. 책상 위에 전공 서적이 쌓여 있었다. 벽에 걸린 시간표. 수강 신청 확인서. 창밖으로 보이는 건물에 '학생회관'이라고 적혀 있었다.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2019년 3월 4일 월요일.

오전 7시 30분.

카카오톡 상단에 '학부 졸업식 D-17' 이라는 메모가 있었다.

한시우는 한참 동안 핸드폰 화면을 응시했다.

2019년. 학부 4학년. 졸업 직전.

아직 회사에 입사하기 전. 아직 대학원에 지원하기 전. 아직 그 끝나지 않는 논문을 시작하기 전.

아직 죽기 전.

손이 떨렸다. 핸드폰을 내려놓으려 했지만 화면이 눈에 들어왔다. 잠금 화면 배경. 옛날 자기가 찍은 캠퍼스 벚꽃 사진. 이걸 찍었던 날을 기억한다. 3학년 봄이었다. 시험 기간이었는데 너무 예뻐서 멈춰 서서 찍었다.

그때는 몰랐다. 이 사진을 다시 보게 될 줄.

이런 식으로.

한시우는 천천히 침대에서 내려와 창가에 섰다.

캠퍼스가 아침 햇살에 물들어 있었다. 3월 초의 차갑고 깨끗한 공기가 열린 창문 사이로 들어왔다.

살아 있었다.

끝났어야 할 삶이 다시 시작되었다.

카프카는 틀렸을까? 아니면 맞았을까?

삶의 의미는 그것이 끝난다는 데 있다고 했다. 그런데 끝났던 삶이 다시 시작되면, 한 번 완성되었던 의미는 어떻게 되는 걸까? 사라지나? 리셋되나? 아니면—

아직 덜 쓴 논문처럼, 다시 이어 써야 하는 걸까?

한시우는 창밖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3장은 좀 고쳐야겠다."

무슨 뜻인지는 자기도 몰랐다.


,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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