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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논문] 제2화: 다시 불리는 이름

서재의문지기 2026. 3. 20.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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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서재 — 판타지/회귀물

제2화: 다시 불리는 이름

2026.03.20 | 채택: 서재의문지기님의 아이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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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인 채택: "시우야!" 누군가 나를 부른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내 이름...서재의문지기

 

[회귀논문] 제1화: 삶의 의미는 그것이 끝난다는 데 있다

그리고, 서재 — 판타지/회귀물제1화: 삶의 의미는 그것이 끝난다는 데 있다2026.03.20 | 시리즈: 회귀논문 카프카가 말했다. 삶의 의미는 그것이 끝난다는 데 있다고.한시우는 그 문장을 처음 읽었

and-then-library.tistory.com

 
"시우야!"
누군가 큰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내 이름이다. 심장발작으로 죽기 전, 사람들은 나를 "한시우"라고 부르기보다는 "그 학생" 또는 "자네"라고 불렀다. 회사에서는 더욱 그랬다. 3년차 사원이라는 직함 아래 개인의 이름은 흐릿해졌다. 석사 과정에서도 지도교수는 늘 "임을 참고하고"라는 식으로, 내 이름 대신 작업을 지시했다.
그런데 이 목소리는 다르다. 내 이름을 정말로 부르고 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공학관 앞 잔디밭이다. 2019년 3월 4일, 화요일, 오전 8시 46분. 캠퍼스는 봄 햇살로 물들어 있었다. 건물 그림자는 길고, 하늘은 옅은 파란색이다. 이 풍경은 기억 속의 것과 똑같으면서도, 뭔가 다르다.
"아, 있었구나!"
목소리의 주인이 다가온다. 얼굴이 보인다. 기억난다. 같은 과 3학년, 윤기준. 분명 이 시점에 봤던 얼굴이 맞다. 높다란 키에 검은 긴 머리, 항상 어딘가 불안해 보이던 녀석이다.
"미안, 나 자꾸 헷갈려. 넌 졸업했는데 자꾸 학부 학생인 줄..."
윤기준은 씨익 웃는다. 그 웃음은 진짜다. 긴장 없는, 문제없는 웃음이다.
그 순간이다. 내 몸이 떨린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나는 죽었다. 정말로. 심장발작이었다. 연구실 책상에 엎어지면서 마지막으로 본 것은 천장 형광등이었다. 그리고 지금 윤기준이 나를 부르고 있다. 이 공간에서, 이 햇살 아래에서 나는 명백히 존재하고 있다.


"뭐하니? 멍때리고 있네."
윤기준이 내 어깨를 탁 친다. 촉감이 생생하다. 따뜻하다. 오전 햇살에 데워진 손의 온기가 전해진다.
나는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맞아, 미안."
"졸업식은 언제지? 내일 모레?"
"그... 맞아. 3월 6일."
"그럼 논문 제출은?"
난 그걸 아는가? 기억이 흐릿하다. 지난 6년간의 시간들이 뇌 어딘가에 겹쳐 있어서, 현재의 2019년이 어떤 시각인지 정확히 포착할 수 없다. 다만 이것은 분명하다. 나는 다시 이 지점에 있다. 졸업 직전, 석사 진학 아래 가는 길과 취업하는 길 사이에서 흔들리던 그 시점에.
"곧이야."
그 대답이 전부다. 윤기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을 뗐다가 멈췄다.
"뭐야?"
"아니야. 그냥... 요즘 넌 자꾸 멀어 보여."
나는 뭔가 무거운 것을 느꼈다. 그건 선의다. 진심어린 의문이다. 다시 돌아보니 내가 2007년부터 2019년까지 12년을 어떻게 살았는지, 그 속에서 얼마나 자주 눈을 들었는지가 훤히 보인다. 나는 자주 자기 발치만 봤다.


"그렇구나."
"뭐가?"
"내가 멀어 보였군."
윤기준은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불안함이 다시 그의 얼굴로 스며든다. 그건 원래 그의 표정이다. 무언가가 자신을 불안하게 만든다. 나처럼.
"시우, 넌 정말... 뭐하려는 거야?"
질문이다. 나도 모른다. 6년 뒤에 가서도 나는 결국 명확한 답을 구하지 못했다. 그래서 죽었다. 맞다. 죽음은 명확했다. 하지만 그 이전의 삶은... 명확하지 않았다.
"모르겠어."
"솔직하네."
윤기준이 다시 웃는다. 이번엔 조금 쓸쓸한 웃음이다. 그는 나보다 3년을 덜 살았음에도, 이 시점에서 나만큼 혼란해 보인다. 아니면 더할 수도 있다. 학부 3학년의 불안감은 순수하다. 아직 세상을 모르기에 곱절로 크게 느껴진다.
"어쨌든 나는 너랑 다른 걸 한다는 게 알겠어. 넌 자꾸 다음을 본다고 해야 하나... 다음, 다음만 보면서 지금을 놓쳐."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가 정말로 대단한 순간이라는 것을. 윤기준이 나를 부르고, 내 이름이 공기에 울려 퍼지고, 내 어깨에 손을 얹어주는 이 순간이. 지난 12년 동안, 특히 마지막 3년 동안 나는 이런 순간들을 몇 번이나 놓쳤는가? 누군가 나를 진심으로 부를 때, 내가 그 음성에 귀 기울였던가?


"너 이제 뭐 할 거야? 대학원?"
"아직 몰라."
"그게 뭐 하는 건데?"
"그냥... 잠깐만."
나는 그를 바라봤다. 윤기준의 얼굴. 검은 긴 머리가 봄바람에 흔들린다. 눈 밑에 다크서클이 있다. 그는 지금도 무언가로 힘들어 보인다. 과제? 사랑? 진로? 돈? 아직 22살의 그에게는 세상이 얼마나 복잡할까.
"그 논문 제출 기한, 정확히 언제야?"
"3월 11일 자정."
"한 주네."
"응."
침묵이 떨어진다. 이 침묵 속에서도 햇살은 계속 내려온다. 공학관의 벽돌은 따뜻하게 데워지고 있다.
"시우, 혹시... 다시 볼 일이 있을까?"
기이한 질문이다. 졸업 후에 보겠지, 동창 모임에서, 이런 식으로라면 당연한 질문을 대놓고 물었다. 마치 이별을 예감하는 것처럼.
"당연하지. 왜?"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넌 자꾸 어디론가 가버릴 것 같고, 내가 잡을 수 없을 것 같았거든."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직감이 맞았기 때문이다. 나는 정말로 어디론가 갔다. 6년을 더 가다 결국 죽음으로 갔다. 그리고 윤기준은 여기 남겨져, 2019년 3월 4일의 캠퍼스에서 계속해서 나를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 나는 여기에 있다. 죽음 너머에서 다시 돌아온 것이다.
"잡아."
나는 그렇게 말했다.
"뭘?"
"나. 잡아. 자꾸 어디론가 가려고 하면, 잡아."
윤기준은 놀란 표정이었다. 그리고 웃었다. 진짜 웃음이다.
"알았어. 그럼 지금부터."
그가 내 팔을 낚아챈다. 한때는 이런 단순한 신체 접촉이 황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게는 이것이 가장 구체적인 증명이다. 나는 죽지 않았다. 나는 여기에 있다. 한동안 잊고 있었던 내 이름도, 나를 부르는 목소리도, 누군가의 손도 다시 느낀다.
"논문 3장은 좀 고쳐야겠어. 논리가 좀 약한데..."
내가 중얼거렸다.
"뭐?"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할 일이 좀 있다는 거."
"12년 전 같은데?"
윤기준이 한 말이다. 내가 6년을 더 살았다는 걸 그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하지만 직감이란 게 있다. 그것도 또 다른 형태의 회귀일까? 아니다. 그건 그냥 인간의 예감일 뿐이다.
캠퍼스의 종소리가 울린다. 8시 50분. 수업 시간이 가까워진다.


"이제 가야지. 너는?"
"나도."
우리는 함께 걸었다. 공학관을 떠나며 나는 뒤를 돌아봤다. 아까 서 있던 잔디밭이 작아진다. 그리고 깨달았다.
 

삶의 의미는 그것이 끝난다는 데 있다고, 카프카는 말했다. 하지만 그건 반만 맞는 말이다. 진정한 의미는 끝나기 전에, 누군가 너를 부를 때 그 음성을 듣는 데 있다. 그리고 그 부름에 돌아서서 대답하는 데 있다.
내 이름이 다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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